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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68편 - 고려장
작성자 권영항 조회 4,854
등록일 03-04-09 15:31
내용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68편 - 고려장

고려장의 우화가 있다.

가난하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늙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깊은 산속에 갖다버렸다는 내용이다.

자식의 등에 업혀서 자신이 죽으러가면서도 돌아갈 자식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무가지를 꺾어서 길을 찾으라는 한결 같은 부모의 마음!

그것에 감동받고 죄책감에 시달린 아비에게, 어린 자식들은 할머니를 버리고 온 지게

를 치우지 못하게 하며 일침을 가한다.

아버지도 늙으면 써야할 지게라며.....

물론, 이 고려장의 얘기가 실제 우리나라 고사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얘기라는 것을

몇몇 역사학자들이 밝혀내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씁씁한 것은 왜일까?


다음 강아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분양이, 놀이터, 박스, 분실이, 푼순이, 지하철.......

눈치가 빠르신 분들이 이미 아셨겠지만, 모두 버림받은 강아지들이다.

분양이는 길거리에 버려진 것을 우리 병원에서 최초로 분양을 시키겠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놀이터는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주워와서 지어진 이름이며,

박스는 병원 셔터 앞에 박스에 담겨져 버려진 강아지의 이름이고,

분실이는 실종된 강아지를 찾아가시라고 전단지까지 작성하여 뿌린 강아지의 이름이며,

푼순이는 골절된 앞다리를 수술한 후 다음날 주인이 반강제로 다시 찾아갔다가 다시

어른의 키높이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골절 부위가 산산히 조각나자 안락사를 요구하며

병원에 놓고간 강아지 이름이고,

지하철은 지하도 화장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강아지를 데리고 왔기에 지어진 이

름이다.


병원에 종종 이런 강아지들이 새 식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처음 한달정도는 병원에서 치료하면서(아픈곳이 있다면) 데리고 있다가,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나 명백히 버려진 강아지라고 판단될 경우는 동물자유연대나 동물학대 방

지연합을 통해 분양을 시켰었다.

한달동안 정이 많이 들게 되면 그냥 병원에서 살게되는 경우도 있었고......

분양이나 분실이, 지하철 같은 경우는 어린 강아지이고 병도 심하지 않은 편이라 치료

가 끝나는 대로 좋은 주인을 만나 새 삶을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도 병원에 남아 있

는 푼순이나 놀이터 같은 경우는 나이도 들고 상태도 좋지 못해서 돌보아줄 사람을 찾

기 힘든 경우이다.


사람병원 중 대학병원 급에는 윤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병원이 영리기관일 수 밖에 없지만, 생명을 다루고 존엄성을 실현해야 하는 곳이기에

경영과 의술의 완충 및 의술의 본문을 지키기 위함이다.

우리병원에는 이런 위원회는 없지만, 위와 같은 강아지가 생기면 토론이 시작된다.


간호사 ; 원장님! 이 강아지 봐주세요.

나 : 응? 얜 누군데? 어디서 났어?

간호사 : 누가 병원 앞에다 버리고 간것 같아요.

수석 수의사 : 피부병이 등과 배쪽에 조금 있고, CRT는 매우 느리고 탈수도 약 7%정도

있는 것 같네요.

나 : (여기저기 상태를 살피며) ...음.....

원무과장(상어아가씨. 이하 원무과장으로 통침함! 상어라고 계속하다가는 매우 맞음)

: 어머 이쁘다! 누가 버리고 갔데? 나쁜 인간들... 이쁘다고 기를때는 언제고

아프니깐 버려?....씩씩

나 : 그사람들의 사연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깐 너무 화내지말고 검사해보게 보정좀 해

줘.

원무과장 : 그래도 그렇지!

(검사를 하는 동안) 얘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나 : 글쎄. 탈수 어때?

간호사 : 아뇨. 귀여우니깐 귀염둥이로 해요.

수석 수의사 : 코카 잡종으로 보이는데 그냥 코카로 하죠?

원무과장 : 아냐, 아냐. 초롱이나 다롱이로 짓자!

실장 : (미용하면서 얘기를 듣고 있다가) 그건 너무 흔해, 딴 걸로 지어...

수석 수의사 : (몇가지 검사를 마친 후) 원장님 파보 양성인데요!. IGM parvo 반응도

높은 양성이고, IGG도 낮구요.

나 : 그래? 음.....이름은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 상태도 별로 좋아보지 않고, 더구나

파보 장염인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수 도 있쟎아.

원무과장 : 그래도 이름은 있어야지, 만약 잘못되더라도 이름을 불러줌으로서 넋이라

도 위로 받을 수 있쟎아.

내가 생각해 볼께...

나 : 자자! 우선 수액걸고 혈청주입 치료 부터 시작해....하는데 까지는 해 봐야지...

(원무과장에게 작명을 맡겨 놓고 급한 치료 부터 시작한다)


---다음날----

원무과장 : 원장님 얘 좀 봐줘요. 어제 보다는 활기차고 좋아진것 같은데...

간호사 : 오늘은 설사가 많이 줄고 나아진것 같아요.

나 : 그래? 파보가 ??? 김선생님, 오늘 다시 IGG 체크해 봐! 어디보자. 에리쓰로포이

에틴제제도 적용해야 할 것 같아.

수석 수의사 : 네! 우리 파보 빨리 낫자....이리온.

(어제 줏은 강아지는 어느새, 어영부영, 얼렁뚱땅, 얼리버리, 시나브로 '파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미 원무과장이 지으려 했던 '초롱이'나 '다롱이'는 산넘고 물

건너 바다넘어 사라진지 오래가 된다. 혹 원무과장님이 이쁜 이름을 지어서 불러서

아무도 따라서 부르지 않게 된다!)


--- 며칠 뒤 ---

원무과장 : 원장님 우리 파보 많이 좋아졌어요....홍홍홍. 밥도 먹고 설사도 안하고

기운이 넘치는지 이제 수액줄을 물어서 끊으려고 하네.

간호사 : 파보 탈수도 교정되었어요.

나 : 다행이네. 고생들 하셨어요. 근데 파보 살만해지니깐 왜 이렇게 나대? 무지 심

란하게 구네.

수석 수의사 : 그러게요. 어제 부터 설치는 것이 장난아닌데요?

원무과장 : 초롱아. 너 이제 그만 까불어. 회복기인데 기운을 까부는데다 쓰면 돼?

(꿋꿋이 자신이 지은 이름을 부르는 상어아가씨....그러나 주위의 반응은 어디에도 없

다!)


--- 다시 며칠 뒤 ---

간호사 ; 원장님 나대기 때문에 미치겠어요?

(다시, 어느새, 어영부영, 얼렁뚱땅, 얼리버리, 시나브로 파보는 '나대기'

로 이름이 바뀌어져 있다. 상어아가씨 역시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동화

되어 '나대기'를 사용한다.)

나 : 왜?

간호사 : 한번 보세요.

(병원 식구들 우르르 몰려든다)

나, 원무과장, 수석 수의사, 실장 : 흐~~~허허헉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는 입원철장을 나대기는 1/3쯤 부서 놓고(놀랬다, 입원철장은

대형견이 물고 발로 차도 끄떡없는 것인데....) 우리가 모여 들자 꼬리를 프로펠러처

럼 돌리고, 응가를 밟은 발로 간호사님 가운에 살포시? 짓누른 서명을 해 놓았으며,

강아지 사료통의 사료가 몇개인지 알아 보기 위해(?) 쏟아 놓았다.

(이날 이후로 간호사가 '먹일 사료 떨어졌어요' 하면 '으~응! 줏어' 하는 썰렁한 유머

가 병원내에 퍼졌다는 유언비어가 보고된 바 있으며, 나대기가 분양되어질 때까지는

큰소리로 나대기를 혼내는 것을 병원에서 종종 듣게 되었다.)


놀이터는 추정되는 나이가 15살 정도다.

처음 발견했을 때, 양측 각막 백탁으로 시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 양측 후지의 심한

퇴행성 골관절염과 전방전십자인대의 완절 파열로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심한 우울과 식욕부진, 극심한 피부병, 그리고 무엇보다 심한 것은 사람에 의해 배신

당하고 버려진 슬픔으로 극도의 공격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안락사가 차라리 나을 것 같은 시점에서, 상어 아가씨(원무과장)는 손이 성할 날이 없

음에도 불구하고 놀이터의 치료를 주장했다.

우리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못했다.

놀이터는 병원에 온지 1년에 동안 백탁의 치료와 관절 수술을 받고 짧은 기간(7주)이

나마 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

내가 짧은 기간이라고 하는 것은 놀이터가 바로 어제 노환으로 인해 사망했기 때문이

다.

1년동안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었는데.....

이제 겨우 병원 식구들에게 꼬리치고 마음을 열었었는데......

이제서야 일어서서 대소변 가리게 되었고, 이름 부르면 쪼르르 걸어 왔었는데.....

슬픔과 아쉬움에 울고 있는 상어아가씨에게 다독거리며 위로를 했지만 나 역시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 능력이 주어져 할 수 만 있다면, 이제 더 이상의 [고려장]은 없기를 바랄뿐이

다.

카오스 캐비어 권영항 나태수

도 장 ' 꽝 '

PS : 나대기는 수석수의사님의 여자친구의 부모님 댁으로 분양되었다.

어느날 캐비어 2호점을 개원하기위해 논산으로 간 선생님이 논의를 위해서 올라오셨다.

나 : 나대기 요즘 어떻게 지내냐?

김선생님 : 형! 깜짝 놀랄 걸요? 무지하게 얌전해 졌어요. 여자친구가 나대기란 이름

을 지은 이유가 좀 활발하게 움직이란 뜻으로 작명한 줄 알아요.

나 : 엉????? 설마???? 어디 아픈게 아니고??

김선생님 : 여자친구 아버님과 하루에 3Km 씩 산책을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피곤해서

얌전한 것 같아요.

나 : 하하하하 !

김선생님 : 더구나 말도 잘 듣고 똑똑하데요.

아버님이 사료를 주면서 '앉아!' 하니깐 앉고, '이리와' 하면 오고,

'뽀뽀'하면 뽀뽀도 한다네요.

한번을 화분의 잎을 물어 뜯길래 '그만해' 했더니 아버님 앞에 와서 애교

도 부렸다는 데요?

나 : 좋은 주인 잘 만난 것 같아 안심이다야.

김선생님 : 친척어른들이 집에 오셨을 때도 나대기 자랑을 한참 하시고 시범도 보이셨

는데, 화분 잎파리 물어 뜯는 것은 여전히 계속 하더래요.

나 : 그래? 어르신 입장이 곤란하셨겠구나!

김선생님 : 아뇨, 아버님이 그런 나대기를 '이녀석 못들은 척 하네' 하면서 위기를

넘기셨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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