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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66편 - 한걸음의 의미
작성자 권영항 조회 3,846
등록일 02-12-12 17:13
내용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66편 - 한 걸음의 의미

나의 아버님은 똑바로 서서 고개를 숙이셔도 발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으신 것은 아니지만, 배주위의 인격(?)으로 인해 발생한 증상이다.

아버님 보고 살을 빼시라고 아무리 권해 드려도, 그때마다 "내가 이렇게 만드느라 얼

마나 고생했는데 빼라 그러냐?" 하면서 대답을 교묘히 피하신다.


아버님의 이 인격?의 형성기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 부터 인것 같다.

그전의 빛바랜 옛 사진들을 보면 지극히 정상이셨으니까!

어머님 말씀으로는 내가 어렸을 때 아버님의 배를 참 좋아했다고 한다.

두들기며 놀기도 하고, 올라타서 놀기도 하고, 숟가락 올려 놓기도 하고, 과자를 숨기

기도 하였단다.

지금은........

우리 태규가 그곳에 리모콘을 올려 놓기도 하고, 밥그릇을 올려놓고는 식사를 하기도

하고, 젓가락으로 두들기기도 하고, 올라타서 덤블링을 하고 있다.

나는 아버님의 건강이 걱정되어 말리지만, 딱 두 당사자(태규와 아버님)는 전혀 반응

이 없다.

특히, 태규는 즐거운 놀이터를 빼앗으려는 훼방꾼 정도로 나를 생각하고 있으며,

아버님은 '지가 사용할때는 언제고 지 아이가 쓸려고 하니 심술부린다' 시며, 전혀

걱정하는 내마음을 게의치 않으신다.

(사실, 자식에게 다 양보하다보니 심술도 좀 난다! 기르는 개도 요녀석이 만지게 해

달라고 하면 줘야하고, 만난 것도 먼저 줘야 하고, 어릴때 부터 내 놀이터 였던 아버

님의 인격?까지 빼앗기니 말이다.)


얼마전 아버님과 고향에 시제를 다녀왔다.

일에 쫓긴다는 핑계로, 학생때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거의 제사에 참석을 못했었다.

이는 아버님도 마찬가지 였다.

연세가 60이 훌쩍 넘어가시게 되자, 아버님은 예전과는 달리 마음이 많이 약해 지셨고,

그래서인지 아주 어렵게 나에게 말씀을 건네셨다.

'니 할아버지 모습이 보고싶다' 고 말이다.


10여년 만에 다시 찾을 고향과 산소는 많이 변해 있었다.

선산의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방문하는 길은 매우 험하다.

가파를 뿐더러 자주 찾아 뵙지 못한 것을 혼내시기라도 하듯 나무들 사이로 있어야 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10년전 산소를 찾았을때만 하더라도 아버님은 그리 힘들지 않게 길을 오르셨는데, 지

금 오르고 계신 것을 보니 세월을 속을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 아버님을 볼때는 내가 10살 적이나 30살 적이나 같은 것 같은데, 이미

아버님은 그자리에서 시나브로 늙어가고 계셨던 것이다.


정확히 5걸음만에 한번씩 쉬셔야 했다.

보폭도 줄어드셨으며, 숨은 거칠게 쉬셨다.

가파른 곳에서는 성치 않으신 손으로 나무가지를 부여 잡아야만 발자욱을 떼실수 있

으셨다.

하지만, 그와중에서도 산소를 향해 눈만큼은 떼지 않으셨다.

나로보서는 그 눈빛을 표현할 길이 없다.

말씀을 나누시는 듯도 하고, 용서를 비시는 듯고 하고, 기뻐하시는 듯고 하고, 마음

으로 절을 하고 계시는 듯도 하고, 웃으시는 듯 하기도 하고, 이제야 마음의 짐이 풀

리시든 듯이 보이기도 하고........

내가 아버님 나이가 되면 저런 눈빛을 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늘이라는 페키니즈가 있었다.

인천에 사시는 분이 주인인데, 홍역을 앓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 내원했을 때는, 이미 신경증상이 진행되어 있었다.

머리를 떨고, 사지의 경련과 함깨 움직이지도 못하고,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눈은 합병증으로 인해 포도막염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인은 하늘이를 데리고 여러 병원에 다니셨었다.

가는 곳 마다 가망없음을 판정과 함께 안락사를 권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은 포기 할 수 없었다.

혹, 절망적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셨던 것이다.

하늘이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에서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예후가 좋지 않을 것임을 알려 드렸다.

특히, 홍역이 치료가 되더라도 현재의 신경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물론, 아주 드문 경우에서 신경증상이 약간 호전될 수 도 있다는 것도 알려 드렸지만

내가 말하면서도 나의 희망사항에 가까움을 부정할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집중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 치료기간 동안 주인의 고생은 정말 심했을 것이다.

강아지를 위해 그만 마음을 놓아주는 것이 최선일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지 등의 심적인 고생과 더불어,

매일 2~3시간 간격으로 유동식을 만들어 주사기로 하늘이의 입에 떠 넣어 주어야 하고,

앉은자리에서 대소변을 보기 때문에 피부가 짓무르지 않도록 보살펴야 하고, 일정한 시

간에 약을 먹이기도 하고, 호흡의 유지를 위해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는 등의 육체적인

고생을 같이 했으니까 말이다.


하늘이가 치료 받는 동안 주인과 우리 아가씨(원무과장)는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하늘이의 이름은 단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묻자, 과장님이 하늘이나 강이나 바다 등의 이름을 가진 강아

지들이 질병에 많이 걸렸었다고 했단다.

이름이 커서 좋지 않다나??

믿거나 말거나 어찌됐든 주인은 이름을 바꾸어서라도 하늘이가 낫아만 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주인의 정상이었을까, 하늘이(단비)의 의지였을까, 하느님의 도움이 있었을까 알수는

없지만, 하늘이는 한달만에 홍역으로 부터 완치를 판정받을 수 있었다.

주인과 우리 병원식구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음을 아실 수 있으실

것이다.

물론, 후유증으로 머리를 땅에다 찧으며, 앞다리면 겨우 사용해서 몸을 질질끌며 다니

긴 해도, 뒷다리는 전혀 사용하지 못하며 계속 경련 증상이 남아있기는 했어도 이제

하늘이가 하늘로 갈 일은 없어진 것이다.

그러부터 6개월이 흘렀다.

바로 어제 하늘이(단비)가 병원에 들렀다.

정기적인 검진을 받기 위해서이다.

반가운 마음은 웃음을 머금고 있던 내게, 문을 열고 들어온 주인의 첫마디는,

"원장님, 원장님이 신경증상이 없어지지는 않아도 6개월 정도면 간혹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쟎아요. 이제 단비가 뒷다리를 쓰기 시작해요"

"아니? 정말요??. 어디 걷는 것 좀 봅시다"

주인은 하늘이(단비)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늘이(단비)를 부르기 시작했다.

난 내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단비는 앞다리에 신체의 하중을 실었지만, 말라서 위축됐지만 그 다리로 일어서서,

뻣뻣해져서 구부려지지는 않지만, 위태로워 보였지만 정확히, 한걸음 한걸음을

떼어 놓았다.


3~4걸음에 한번씩 넘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전히 머리는 땅에 찧으면서도 말이

다...

그러나,

그 눈만은 주인을 향해 떼지 않은채, 그 눈에서 많은 말을 하면서, 어려운 걸음을, 한

발씩 다시 시작했다.

주인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세상을 살면서 걷는 모습이 나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방에서 기어다니기만 하던 태규가 첫 걸음마를 했을 때도 그러했고, 힘이 부치시는

몸으로 험한 산을 오르시던 아버님의 걸음이 그러했고, 우리 아가씨가 태규를 낳고

누워만 있다가 며칠만에 처음 엉거주춤 걸을 때가 그러했으며, 슬개골 탈구 증후군으

로 수술받았던 강아지 들이 첫걸음을 걸을때가 그러하며, 하늘이(단비)가 6개월만에

걷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그러하다.

그 걸음이 내게 준 감동의 깊이와 크기는 다 다르지만, 그 한걸음의 의미는 내가 눈을

감을 날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한 걸음의 의미는 마음의 울림 이 아닐까?

카오스 캐비어 권영항 나태수

도 장 ' 꽝 '

PS : 오늘도 갖가지 리모콘을 아버님 배 위에 전시하는 태규를 보고, 한숨을 쉬면서

출근했다.

그 한숨이 아버님의 배를 빼앗긴 아쉬움인지, 손주를 향한 아버님의 사랑에 대한

것인지, 아버님의 나이드심을 막을 수 없는 자식의 아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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