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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커뮤니티 > 어느 수의사의 일기

제목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55편 - 동감.......
작성자 권영항 조회 2,908
등록일 02-07-13 12:47
내용 55. 동감...........


'아롱이' 라는 슈나우처 잡종이 있었다.


내글을 읽었었던 독자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동네 주민들로 부터 개를

가장한 염소로 불리워진 뚱땡이 아롱이.

퇴계로에서 연수 수의사로 있을 때 첫 월급 받은 기념으로 부모님께 선물한

아롱이와 다롱이 중에서 장판지 뜯어먹고, 수술하여 살아남은 가장 아끼던

사랑스런 아롱이.

엄청난 몸무게로 반갑다며 나에게 달려 들던, 그래서 그 파워에 종종 급소

부위를 부딪혀 숨을 몰아 쉬게 만들던 아롱이.

오랜만에 늦잠을 좀 자려 하면 육중한 발톱으로 내 머리를 긁던 아롱이.

허리가 아파서 방 바닥에서 자려하면 아롱이가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두려워 베개를 배부위에 안고 자게 만든 아롱이.

커피 먹을 때 옆에서 불쌍한 표정 지으며 애걸하던 아롱이.

결국 얻어먹고 좋아라 뛰어다니던 아롱이.

엉덩이 두둘겨 주면 좋아서 발랑 드러눕던 아롱이.

그외에도 하나 하나 돌이켜 보면 추억하나 하나가 아름다울수 있게 만든

아롱이. 그 아롱이가.......


비는 미친 듯이 오고,

기나긴 지루함에 열심히 스타크래프트에 몰두 해 있을 즈음,

(요사이 병원 인턴 수의사로 부터 스타를 배웠죠. 정말 시간 가는 중 모르고

있답니다. 이걸 할 줄 알아야 신세대 수의사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내가 방

금 만들어낸 거짓말을 쓰며...)

시계는 아홉시를 넘기는 종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병원 문이 부서져라 큰 소리를 내며 들어오시는 아주머니.

까만색 푸들을 들고,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호소를 하시며 저를 찾습니다.

어느새 오랜 기간 병원을 운영하던 경험에 의해 아주 위급함을 목소리에서

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강아지의 이름은 까미.

지하철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데 강아지가 워낙 이쁘고 애교도 많고

사람을 잘 따라서 제가 기억을 하고 있던 강아지죠.

가끔 제가 지하철 역을 지나갈때면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이 식당을 기웃

거렸고, 아주머니는 강아지를 안고 밖으로 나와서 제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자신의 강아지 자랑을 입에 침이 튀겨라 하셨죠.

막내 딸이라고 하며.....

가족이라며.....

얘 없이는 못 산다고.....


저는 항상 같은 말을 했었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아롱이가 떠난 후 부터는 이렇게 말을 했죠.

아주머니 정말 좋으시겠어요 라고....


아롱이는 5개월 전에 세상을 떴습니다.

교통사고 였습니다.

다른 집 강아지는 교통사고가 나서 부러져도 한달 입원하고, 수술하고,

깁스하고, 물리치료 받고 정상을 회복했었는데,

하필 내 강아지는, 누가 덩치가 커서 큰 일만 저지른다고 할까봐,]

하필 거대한 버스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녀석이 덩치가 커서 왠만하면 꿈쩍도 않을 놈이었는데,

하필이면.....

새벽 6시 어머니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하던 아롱이는 그렇게 허무하게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외침에 깨어 도로로 나가보니,

어머니는 제게 생명에 지장 없겠냐고 물으시며 빨리 치료해 주라고 하시더

군요.

아롱이는 가망이 없었습니다.

골반이 산산 조각이 났고, 동맥혈은 피를 솟구치고 있었으며, 엉덩이 근육

의 절반이 없었으니까요.

전 제가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를 쓰면서 맨 처음 글에 올렸다시

피 정말 유능한 수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남들 모르게 수없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아롱이가 사고 난 순간,

난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에 급급할 뿐,

너무나 어이가 없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너무나 제 자신이 싫어져서......


최후의 결정을 했답니다.

아롱이는 이미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고,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처치 뿐이었습니다.

아주 객관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한 끝에, 눈물을 훔치시느라 정신이 없으

신 어머님께 아무 말도 없이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있는 힘껏 죽어라 달렸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오분인 병원이 왜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숨이 턱에 차서 가슴이 아파오는데도 아랑곳 없이 병원에 약을 빼들고,

다시 사고지점으로 뛰어갔습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 눈물이 휘날리는 것을 닦을 틈도 없이요.


사고 지점에 도착해서 내 시야에 비추인 것은, 아롱이의 싸늘한 주검이었습

니다.

아롱이는 단 몇분도 버틸수 없었던 것이죠.

또 한번 제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습니다.

'차라리 아롱이 곁에서 마지막을 같이 해야 하지 않았을까?'

못다한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입밖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사약을 땅에 내던지며,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쳤습니다.


아롱이는 그날 땅에 묻혔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면서 저는 정말 병원에 가기 싫었습니다.

거기서 멀쩡한 얼굴고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고, 강아지의 병을 치료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아롱이가 그런걸 바라지는 않을 것 같더군요.

이날 하루 종일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를 잡았고,

이날 하루 종일 떨리는 다리를 겨우 버티며 약을 지었고,

이날 하루 종일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역시 하루 종일 세수를 했습니다.

이날도 비가 미친듯이, 하늘이 무너진 듯이 오더군요.


까미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 옷 상의가 새빨간 색으로 물들만큼 피를 흘리며 병원에 왔습

니다.

까미는 양 앞다리가 복합골절로 피부 몇 가닥에 의존해서 겨우 붙어 있더군

요.

동맥이 끊어져서 실혈이 엄청났고, 갈비뼈의 골절로 폐에 손상이 심해서 호

흡도 어려운 상태이더군요.

아주머니는 우선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냐고 물으시던 군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런 제 표정에 설움이 복받치시는 듯, 하염없이 어떻게 해야

되겠냐고 하셨습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다시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그럼 얼마나 살아있겠냐고 물으셨습

니다.

까미는 이미 마지막 호흡 직전 이었습니다.

'채 1분도....'


충격이 심하신 듯, 잠시 아무말씀도 못하시더니 제게 고통을 덜어 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성을 찾으시길 위해 애쓰시며, 시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서둘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시부모님 역시 너무 아끼시기에 차마 안 보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면서요.


까미는 주사 직후 얼마되지 않아서 조용히 마지막 숨을 쉬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시간 안에 못다한 말을 하시기 위해 애쓰시고 계셨습니다.

너무나 당황하여 문맥도 맞지 않고, 너무나 서글퍼서, 너무나 할말이 많아서

더듬거리시면서요.

까미는 그렇게 주인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롱이가 생각이 날까요?

까미가 부러웠습니다.

주인의 품에, 아끼던 품에서 죽을 수 있었으니까요.


종이로 된 관에 까미를 잘 수습해서 담은 후 주인 가슴에 담아 드렸습니다.

그때 아주머니의 시부모님이 병원에 오셨습니다.

까미가 어떻게 다쳤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치료 받는 것을 보시러 오셨답니다.

까미는 할머니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의 가슴에 하얀 종이관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사정을 아신 듯 목이 메이는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일찍 왔...으면 죽기...전에 얼..굴 이나 한번 볼 수 있었.....는

데....'

주인은 제 병원에서 애완동물 화장대행 업체에 연락하신 후 까미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비가 미치도록 오는 군요.

비에 종이관이 젖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가끔은 하느님도 이럴때는 편의를 봐주어야 하지 않을 까요?


병원에 교통사고로 오는 강아지가 많습니다.

여지껏 그일로 안락사를 시도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완치되어 뛰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단 두마리가 가슴을 이렇게 적시는 군요.

하필이면, 정이든 강아지가요.

하필이면, 나와 가깝던 강아지 들이요.

하필이면, 이럴 때 제가 수의사 이군요.


저는 전생에 남의 가슴을 많이 아프게 했는가 봅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가슴이 저미는 것을 보니까요.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길면 긴 시간인데, 아직도 아롱이의 초롱한 눈이

잊혀지질 않는군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더!

하느님이 별로 제 맘에 들진 않지만, 억지로 좋게 생각하면 살아온길을

뒤돌아 보라는 뜻 같군요.

반성하고, 좋은 일을 하며 살라고.

하지만 하느님!

그것을 깨닫게 하는 댓가 치고는 너무 크지 않아요?

이제 또 하나 잊혀지지 않을 것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병원 문을 닫고 나가시면서, 탄식을 하던 것이요.


"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니가.. 먼저 ...가 누..."


까미와 아롱이도 다른 세상에서 멀쩡하게 뛰어다니고 있겠지요.


여전히 비가 오는 군요.


가끔은, 아주 가끔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랫만에 눈물을 흘려봅니다.

아주머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신 것 같더군요.

벌겋게 충혈된 제 눈을요.

아주머니는 아셨을 겁니다.

지금의 아주머님의 심정과 제 심정은 동감이니까요.


카오스 캐비어 권영항 나태수

도 장 ' 꽝 '


PS : 지금 쏟아붓고 있는 비는 아주머니의 심정일까요?

아니면, 아주머님의 흘린 눈물을 씻어주기 위한 까미의 노력일까요?

지금도 제 마음이 얼얼한 것은 아롱이 때문일까요?

아니면, 까미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린 이의 가슴저민 처절함과 동감일까요?


부디 명복을 빌며........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56편 - 별 헤는 밤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54 편 - 날아라 비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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