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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태수] 어느 수의사의 일기 44 편 - 비둘기
작성자 권영항 조회 2,320
등록일 02-07-13 12:29
내용 43. 비 둘 기


오늘도 비둘기 한 마리가 병원 앞에서 날라왔다.

나를 흘깃 한 번 보고, 부리를 땅 바닥에 쪼며 무언가를 먹더니 푸드득 날라간

다.

내가 세를 얻고있는 병원건물 주인의 까만색 승용차에 새똥을 떨구고는.....


착한 비둘기 !!!

건물주의 악행을 아는 구나!

뭐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병원을 옮기라고 하더니, 결국 비둘기에게 테러를

당하는 구나! 하하!


- 혹, 필자 분들중에서 나태수란 양반이 사악해 졌구나하고 생각하실 까봐 사

족을 단다. 이유는 좀 있으면 아실 것이다. 난 결코 사악하지 않다. -


1999년 겨울, 얼마전의 야그다.

눈이 무척 많이 내리고 있었다.

밖의 눈을 보며,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였다.


'따르릉' 전화 벨이 울렸다.

"네, 동물병원입니다."

"네 거기 동물병원이죠? 새도 진료하나요?"

"아~, 네에, 저희 병원은 애완견을 주로 진료합니다. 기르시는 새가 심하게 아

프시면 서울의 조류 전문병원을 소개시켜 드리죠"

"아니요 거기까진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성남에는 전문 병원이 없나요?"

"글쎄요 조류 전문병원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종류가 뭐죠?"

"저희가 기르는 새가 아니구요. 비둘기인데... 집앞에 쓰러져 있는 것이 너무

불쌍하고, 그렇다고 멀리 가기에는 그렇구.."

"그럼, 일단 데리고 와 보십시요. 한번 치료를 해 보도록 하지요"

나는 솔직히 새는 자신이 없었다.

새의 종류도 워낙 많은 데다, 질병의 진단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계장에서 일년 넘게 근무를 하면서 새의 질병에 대해 공부를 따로

한대다가 종종 병아리를 치료해 본 경험으로 어찌되었던 치료를 해 보기로 결

심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비둘기는 손님의 주인이 기르시는 것도 아니고 흔히 길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주인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해 주시려고 하는데,

역시 동물을 사랑하고 그 생명을 소중히 다루어야 할 수의사로서, 아파서 고생

하는 비둘기를 그냥 모른척 넘어갈 순 없었다.

그 손님이 오시기 전까지 나는 책장을 온통 다 뒤져서 비둘기에 관련된 책은

다 꺼내어 놓았다.

오래동안 펼쳐 보지 않아 먼지 투성이가 된, <조류질병학> <Diseases of

domestic fowl & turkey> 등 몇 권을 찾았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냄새를 맡으며 비둘기에 관련된 사항을 찾고 있는 동안 손

님이 비둘기를 박스에 담아서 데리고 오셨다.

아주머님이었다.

이쁜 소녀 한명과 같이 (아마 딸인듯) 안쓰러운 얼굴을 하신채 병원에 들어오

신거다.


비둘기는 쪼그리고 서서 머리를 가슴에다 푹 숙이고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

다.

사람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도 비둘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체온은 떨어져 있었고, 활력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한참 비둘기의 병세를 체크하고 있을때, 손님이 말씀을 건네 셨다.

"얘도 생명인데 집앞에서 벌써 3시간째 저러고 있더라구요. 동네 꼬마들이 돌

을 던지며 겁주어도 꼼짝 않고 있길래, 바로 집에 데려와서 먹을 것을 주었는

데도 쳐다도 보지 않는 거에요"

"참, 치료비는 얼마나 나올까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손님이 키우시는 것도 아니고 불쌍하다고 데리고 온 것인데, 얼마를 받아야 하

나?

치료비를 받든 안받든 내가 완치시킬 자신은 있는가?

또한 이 손님의 가정 형편도 그렇게 넉넉해 보이지 않는데(옷차림으로 사람을

구분하지는 않지만, 이 분의 마음이 너무 따뜻해 보여서 치료비의 부담을 줄이

고 싶었던 것이 내마음), 돈을 꼭 받아야만 하나?

막상 비둘기를 마주 대하자 더욱 자신이 없어진 나는, 주인의 질문에 차라리

솔직히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냥 비둘기 제게 나두시고 가세요. 제가 치료를 자신 할 수 없는 데다가, 키

우시는 것도 아니어서 치료비를 받기가 애매 하네요"

주인은 잠시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강아지 하루 입원비가 얼마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자, 이번엔 이 비둘기 얼마나 입원을 해야 하겠냐고 물었다.

자세히 모르겠지만 한 3일 정도 입원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이 손님이 자신이 그럼 입원비의 절반을 부담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사양을 했고, 남들이 보면 이해하기 힘든 줄다리기가 잠시 이어진 후, 결

국 그 손님이 치료비의 1/3을 부담하겠다고 하시며, 치료비를 내 책상에 올려

놓고는 도망치듯 나가셨다.

내가 또 그것마져 거절 할 까봐.....


이 손님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잠시 미소를 짓다가, 다시 비둘기를 살피기 시

작할때, 아까 그 손님의 꼬마 아가씨가 다시 병원 문을 빠꼼히 열고 머리만 쏙

내민채 나에게 한마디 하고는 얼른 문을 닫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저씨, 꼭 살려 주세요!"


귀여운 꼬마 아가씨!

나는 미처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가버린 꼬마 아가씨를 생각해서라도 비둘기

를 반드시 치료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러. 나!

비둘기가 걸린 질병을 좀처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외부의 창상이나 상처가 없었으므로 다친것은 아니고, 그럼 내과 질환 인데,

의심되는 병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독극물 중독일 수도 있고, 그외 여러가지의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발병일 수

도 있고, 아뭏든 책을 찾아보면 볼 수록, 점점 더 진단을 하기가 어려웠다.

여러모로 질병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우선 대증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포도당을 나주고, 항생제와 소염제를 쓰면서 비둘기를 돌보았다

하루가 지났다.

비둘기는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낮에 꼬마 아가씨가 얼굴을 빠꼼히 내밀고 비둘기 상태를 물어보고 갔다.

나는 아직도 좋지 않다고 말하고, 꼬마를 돌려보내고 난 후 새 모이를 사가지

고 왔다.

혹시 먹을 것을 주면 먹을까해서, 쌀도 주고 밥도 주고 조도 줘 보았지만, 비둘

기는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6시간 간격으로 꾸준히 주사를 놓고, 정기적으로 관찰을 했지만 차도가 보이

지 않자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진단의 실수는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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